호머 헐버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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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

서울의 도심 풍경에는 상당히 많은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 가끔 그릭스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세종문화회관을 지나 주시경 마당을 통과하곤 합니다. 주시경 선생은 한국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죠. 그는 한글이라는 이름을 짓고, 한글 학회를 설립했으며, 현대 한국어학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딴 이 주시경 마당에는 한국어학 발전에 기여한 또다른 중요 인물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바로 호머 헐버트 박사입니다. 저는 얼마전 이곳에서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의 김동진 회장님과 만나 헐버트 박사와 한국 역사에서 그의 역할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님이 저에게 사민필지한 부를 주셨습니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제 아내 로빈의 고향인 버몬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다트머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1886년 육영공원의 교사로 조선에 왔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평론(The Korea Review)을 창간하고 다수의 교과서를 저술해 사람들 사이에 널리 읽히도록 했고, 또한 조선의 독립을 지지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고종 황제의 신임을 얻어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저지하기 위한 황제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그의 가장 뛰어난 역할은 한글과 현대 한국어 발전에 기여한 것입니다.  
헐버트 박사는 일생동안 한국과 한국어에 대해 배우고자 노력했습니다. 나라에 대해 많은 글과 책을 영어로 남겼고, 일생을 바쳐 한국어를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연구를 통해 한글의 역사, 정서법과 음운론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쓰기도 했습니다주시경 선생은 원래 헐버트 박사의 제자로 선생의 한글에 대한 초기 학문적 이해는 바로 헐버트 박사로부터 배운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이후 독립신문 발간에도 힘을 합쳤습니다. 헐버트 박사의 노력은 주시경 선생의 노력과 함께 현대 한국어 연구의 중요한 학문적 근간이 되었습니다.

헐버트 박사의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에 대해 김동진 회장님의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1907년 헐버트 박사는 일본 조선통감부에 의해 추방되어 미국으로 강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헐버트 박사는 미국에서도 당시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미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계속 노력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온지 일주일 후, 헐버트 박사는 8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고 양화진 묘원에 묻혔습니다.

기념비에 새겨진 글귀를 읽고 있습니다.

헐버트 박사의 인생과 업적, 그리고 한미 양국 관계 증진에 기여한 역할에 대해 알게 되어 정말 좋았습니다. 이 중요한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김동진 회장님을 비롯한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헐버트 박사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함께

혹시 근처에 오실 일이 있다면 주시경 마당에 들러보세요. 주시경 선생과 헐버트 박사의 동상을 보며 이들이 한국 역사에 미친 영향을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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